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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id="article_view_headline" class="article-head"> <h4><span class="title">[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신민족주의 파도, 세계를 삼키다</span></h4> <p class="date-time"><em>등록 :</em>2018-10-16 18:29<em>수정 :</em>2018-10-17 12:03</p> </div> <div class="article-body type01"> <div class="a-left"> <div id="a-left-scroll-start"> <div id="a-left-scroll-in"><!-- //기사툴바메뉴 --> <div class="article-text"> <div class="article-text-font-size"> <div class="subtitle"></div> <div class="text"><b><span style="color: #278f8e">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극우들이 12%(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부터 37%(폴란드의 ‘법과 정의당’)까지 약 10~30%대의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지분을 안정적으로 갖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폴란드부터 일본까지 신민족주의의 파도가 전세계를 삼키게 된 것일까?</span></b></div> <div></div> <div class="text"><span style="color: #278f8e"><b>신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친자본 정책이다. 한데 ‘민족단결’, 즉 극우세력의 기반 다지기 차원에서는 ‘우리 민족/국민’에 한정해서 각종 포퓰리스트적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취직 시장에서의 경쟁자로 오인될 수 있는 이민자와 피난민 등과 함께, 대중적 편견의 대상이 되어온 각종 소수자들이 탄압을 받게 된다.</b></span> <div class="image-area"> <div class="imageC"> <div class="image"><img title="" src="http://img.hani.co.kr/imgdb/resize/2018/1016/00503245_20181016.JPG" alt="" /></div> </div> </div> 지난 8월에 세계철학대회 참석차 잠깐 중국 베이징에 들른 적이 있었다. 얼핏 보면 각국에서 온 참석자보다 경찰들이 더 많아 보여 적지 않게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등록접수처 바로 뒤에 걸린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라는 커다란 표어였다.</div> <div></div> <div class="text">그 ‘핵심 가치관’은 열두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맨 처음 항목은 다름 아닌 부강(富强)이었다. 사회주의를 개인적 신념으로 삼고 살아온 나로서는 내 눈을 믿기가 힘들었다. 비록 ‘사회주의 핵심 가치’로서의 ‘부강’을 중국이 공식적으로 ‘prosperity’, 즉 ‘번영’이라고 영역한다 해도, 사실 ‘부강’이란 제국주의 시대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준말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부강’을 강조한 것은 수차례의 대외 침략을 감행한 메이지 시대(1868~1912)의 일본 정부나, 일본을 벤치마킹해서 중국을 개혁하고자 했고 구한말의 조선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했던 량치차오(양계초, 1873~1929) 같은 사상가들이었다. 한데 량치차오는 중국에 사회주의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그저 국민국가로서의 중국의 ‘부강’을 열망했을 뿐이다. 그런 역사적 맥락을 가진 ‘부강’은 과연 언제부터 ‘사회주의 핵심 가치’로 둔갑했을까?</div> <div></div> <div class="text">100년 전의 망령들이 부활하는 것은 중국뿐일까? 며칠 전에 일본의 신임 문부상인 시바야마 마사히코가 1890년에 메이지 정부가 반포한 교육칙어(?育勅語)에 대해서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하면서, “동포를 소중히 여기는 등의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현대적으로 재구성해서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것은 장관 개인의 ‘의견’이라기보다는 교육칙어의 일부분을 현대화해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아베 내각의 결정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도 학교에서 외워야 했던 교육칙어의 내용에 대해서 시바야마 장관은 거짓말을 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교육칙어의 텍스트에서 ‘동포’같이 수평적인 관계를 함의하는 단어들은 안 보이고, 오로지 ‘신민’(臣民)들이 나타날 뿐이다. 그리고 그 신민들이 유사시에 “의용(義勇)을 다하여 봉공(奉公)함으로써 천양무궁(天?無窮)한 황운(皇運)을 지켜야 한다”, 즉 몸을 내던져 천황의 국가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어 있다. ‘부강’과 ‘사회주의’가 서로 무관하듯이, 근대 민주주의와 몸을 내던져 ‘황운을 지키라’고 훈화하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도대체 한반도의 서쪽과 동쪽에서는 지금 어떤 사상적인 변화의 움직임들이 나타나는 것일까?</div> <div></div> <div class="text">아베 신조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1896~1987)는 만주국 고위급 관료로서 군국 일본의 중국 침략에 앞장섰던 반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제창하는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1913~2002)은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투사였고, 국가의 ‘부강’보다 ‘민생’을 더 중시한 나머지 마오쩌둥으로부터 여러 차례 박해를 받은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는 지도자 개개인의 성향이라기보다는 세계 각국에서 감지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전체의 하나의 경향이다. 신민족주의는 과연 동아시아만을 강타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div> <div></div> <div class="text">세계체제에서 서로 위치가 판이하게 다른 핵심부 미국과 준주변부 러시아, 터키 등지에서 ‘강력한 지도자’들이 ‘우리 대국의 부활’을 외치면서 기염을 토한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스웨덴에서마저도 이민자들을 더이상 절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극우 ‘스웨덴 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17% 이상의 득표 결과를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니, 놀랄 일도 사실 없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극우들이 12%(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부터 37%(폴란드의 ‘법과 정의당’)까지 약 10~30%대의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지분을 안정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폴란드부터 일본까지 신민족주의의 파도가 전세계를 삼키게 된 것일까?</div> <div></div> <div class="text">역시 놀랄 일도 없다. 극우들이 극성을 부렸던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대대적인 위기가 민족주의 광풍을 가져오는 것이다. 전후 호황이 끝난 지 이미 40여년이 지났고, 그때 만들어진 이래로 근근이 그 근간이라도 이어왔던 복지체계는 19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개악들과 2008년 공황 이후의 긴축정책 등에 의해 뿌리부터 흔들렸다. 그나마 다수의 중국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고속성장은 이미 6%대로 한풀 꺾였고, 부실한 복지망에도 불구하고 한때 노동자들에게 ‘종신고용’의 단꿈을 안겨주었던 일본은 이제 비정규직 비율이 약 37%나 된다. 차세대 노동자들이 고용불안과 저임금, 그리고 높은 주거비용에 맞닥뜨려 사회 진출에 큰 고통을 느끼지만, 자본가들도 세계 시장의 포화와 이윤율 저하로 고심한다. 사실, 노동자이자 세입자이기도 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주거비 인상의 근본적 이유 중 하나는 이윤 마진이 떨어진 제조업 대신에 부자들의 돈이 대거 부동산 투기에 몰리기 때문이다.</div> <div></div> <div class="text">자본주의적 메커니즘이 고장날 때마다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급진화된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나 영국의 제러미 코빈의 인기 상승이나, 한국의 20대 사이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현상들은 바로 이 경향을 대변한다. 그러나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좌파적 대중 동원 못지않게 극우적 대중 동원의 그림자도 짙어져간다. 좌파는 1936~38년의 프랑스 인민전선처럼 재분배의 활성화와 일부 생산시설의 사회화를 제시하지만, 극우들 역시 193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게 ‘민족 국가’와 ‘민족 경제’로의 회귀를 요구한다. 아직도(!) 1930년대 후반과 달리 여러 극우 정권이 세계 규모의 침략 전쟁을 발발시키지 않은 것은 그나마 약간의 위안이 되는 차이가 존재할 뿐인데, 불행히 이것도 시간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div> <div></div> <div class="text">1930년대 파시스트들처럼 신민족주의자들이 자본에도 노동에도 당근을 던진다. 물론 자본에 던지는 당근은 가장 크다. 기업세 인하나 양적 완화, 대대적인 기간시설 확충 프로젝트부터 트럼프가 이제 노골적으로 시도하는 보호무역으로의 귀환까지, 자본은 공격적·경쟁적인 성장주의 의제의 수혜자가 된다. 언론에 대한 통제 강화 등 각종 권위주의적 시책으로 오명을 얻은 신민족주의의 대표 격인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는 누진세율 대신 빈부와 상관없는 15%의 일률 과세를 도입해 부자들의 세금을 크게 깎아주기도 했다. 사실, 전형적 신권위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은 다 10~13%의 비교적 낮은 일률 과세율로 신흥부유층의 자본 축적을 열심히 돕는다. 이와 함께 총자본에 도움이 되는 것은 군수기업들을 지원하는 경향적인 군비 인상이다. 지난 20년 동안 계속 커져온 세계의 군비는, 지금 이미 냉전 말기의 수준을 상회한다.</div> <div></div> <div class="text">고전적인 파시즘처럼 신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친자본 정책이다. 한데 ‘민족 단결’, 즉 극우세력의 기반 다지기 차원에서는 ‘우리 민족/국민’에 한정해서 각종 포퓰리스트적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취직 시장에서의 경쟁자로 오인될 수 있는 이민자와 피난민 등과 함께 여태까지 대중적 편견의 대상이 되어온 각종 소수자들이 탄압을 받게 된다. 배외주의적 ‘국민동원’과 군사주의적 대결 등으로, 다수의 실질소득이 제자리걸음하거나 떨어지는 상황에서 피지배층의 민심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div> <div></div> <div class="text">상당수의 피지배층이 이와 같은 국가주의적 선동에 넘어가는 이유는 신자유주의를 제대로 저지하지 못한 좌파 내지 중도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이 부분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약 문재인 정권의 사회경제정책이 실패하면 국내 대중의 민심도 얼마든지 다시 우향우할 수 있다. 평화정책 못지않게 민간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재벌개혁, 부유층에 대한 세율 인상과 복지 지출의 대폭 강화에 당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div> </div> </div> </div> </div> </div> </div> 원문보기: <a href="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6075.html#csidx67e57c734e7e2b5b4de4504ea72d6f2">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66075.html#csidx67e57c734e7e2b5b4de4504ea72d6f2 </a><img src="http://linkback.hani.co.kr/images/onebyone.gif?action_id=67e57c734e7e2b5b4de4504ea72d6f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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